
[Brilliant Billiards=유성욱 기자] 노래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음주가무를 즐긴다. 스크린 골프장에서 시원한 맥주와 치킨으로 동반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렇다면 당구장에서도 당구와 음주,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음주당구 마니아들을 위한 딱 어울리는 당구장이 있다. 술과 안주가 있는 당구장 바로 ‘큐룸’이다.
금융권에서 30여년간 몸담았던 동창이 정년을 몇 년 앞두고 당구장을 오픈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경영이 어려워진 동네 당구장 하나를 어찌어찌 인수한 것 같았다. 동창회에서 ‘돈세다 잠들게 하소서’라는 문구가 적힌 개업 축하 화환을 보냈고, 개업식날 소싯적 당구 좀 쳐봤다는 동창생 무리가 우루루 신장개업 당구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국제식 대대를 처음 봤다는 동창도 있었다. 곧바로 조가 짜여져 당구대 몇 개를 점령했다. 누군가 가져온 치킨에 소주, 맥주가 테이블 위에 펼쳐졌고, 막걸리만 마신다는 누구는 근처 편의점에서 장수막걸리를 봉지 한 가득 사 왔다. 중국집에 짜장과 만두를 시키려고 알아보는 동창놈도 보였다.
그런데, 한참을 불편한 기색으로 지켜보던 누군가가 폭발했다. 당구장을 인수한 동창을 대신해 당구장 운영을 맡은, 또래의 동업자는 당구에 진심인 스포츠맨인 듯 싶었다. 당구장을 인수한 동창이 그 친구를 달래는 모습이 보였고, 개업식날 노출된 동업자의 마찰에 분위기가 쏴해져 게임이 마무리된 팀부터 근처 호프집으로 자리를 떴다. 얼마 후 들려온 소식. 당구장 운영을 둘러싼 갈등에 동창이 당구장에서 손을 뗀 모양이었다. 하지만 수준 높고 격조 있는 당구장을 운영하려는 그 동업자도 어려움이 있었는지, 결국 당구장이 다시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우리 사회는 지금도 여전히 당구장과 당구문화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이 존재한다. 생활체육과 스포츠 공간으로서의 당구장이 앞에 있다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유흥과 놀이의 공간으로서의 당구장이다. 특히, 옛 당구문화를 추억하는 중장년에게는 후자가 아쉬움이자 갈증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그런 당구장과 당구문화가 주는 즐거움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대중이 즐기는 음악의 세계는 분명 ‘팬텀싱어’도 있고 ‘미스터트롯’도 있다. 마찬가지로 세대를 초월한 더 많은 이들이 더 다양한 방법과 모습으로 당구를 즐긴다면 당구층 역시 더욱 확대될 것이고 이는 당구 산업의 최일선에 있는 당구장에게도 더 많은 선택과 기회의 토대를 제공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찰라에 우연히 바로 이 당구장을 만나게 됐다.

‘음식과 술이 있는 룸 당구장’이라는 문구가 ‘술과 안주가 있는 룸 당구장’으로 읽히며 조금은 야릇한 상상을 발휘하게 하는 ‘큐룸’ 당구장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먹자거리 사이에 있다.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었기에, 과연 어떤 모습일까,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 4층에서 내리자마자 ‘와’ 하는 탄성과 함께 동창이 인수했던 신장개업 당구장에서의 씁쓸했던 뒷맛이 떠올랐다. 자식! 이런 당구장을 오픈하고 동창들을 불렀어야지.
‘큐룸’ 당구장은 전체 공간이 프라이빗한 룸 형태로 설계되어 있으며, 룸에서 당구는 물론 음식과 술을 곁들이며 각종 모임과 파티,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룸에는 별도로 흡연실까지 설치되어 있다. 프라이빗 룸 형태도 특이하지만, 가장 시선을 끄는 것 중 하나가 벽면의 메뉴판. 훈제오리, 모듬소시지, 탕수육, 어묵탕, 반건조오징어 등 10여 가지 이상의 안주와 떡볶이, 라면 등 분식, 그리고 호프를 비롯한 각종 주류가 적힌 메뉴가 ‘취중다마’에 대한 기억 소환과 함께 기대를 부풀린다. 그런데 심지어 메뉴에 적힌 음식과 안주가 맛있다는 평판까지 뒤따른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다. 중대는 10분에 2,500원, 대대와 포켓볼, 6구는 10분에 3,000원이다. 당구대 2대가 차지할 공간을 룸 하나가 차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저렴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음식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다. 당구장은 24시간 영업한다.
식당카트에 생맥주와 안주를 싣고 룸으로 서빙하고 있는 김영만 대표, 그가 당시에는 없던 새로운 사업모델인 룸당구장을 처음 오픈한 것은 지난 2020년 2월. 주방과 카운터, 룸을 오가는 틈틈이 지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런 당구장 시스템을 처음 생각한 것은 20년 전입니다. 그러다 드디어 2020년 2월 오픈했는데, 아뿔싸 코로나19가 터진 거에요. 그 여파로 1년에 당구장 몇천곳이 폐업했는데, 우리 당구장만 호황을 누렸죠. 룸 형태라 다중이용시설 및 집합문제에서 자유로운 영향이 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음식과 술을 파는 당구장’이란 모델이 가능했을까? 하물며 노래방에서 맥주 한 병 파는 것도 불법으로 신고되고 단속되는 세상인데...

“고건 서울시장 당시 숍인숍 제도가 처음 도입됐어요. 거기에 착안했습니다. 저희는 ‘큐룸’이라는 당구장 시설과 별도로 ‘취중다마’라는 음식업이 숍인숍 형태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당구장에서 술은 파는 것은 불법이지만, 술을 마시는 것이 불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존에 없던 형태라서 행정적인 검토에 시간이 많이 소요됐는데 서울시 13개 구청의 담당 주무관을 만나고, 문화체육관광부 생활체육 담당자와도 이야기하며 운영근거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접한 당구가 그의 인생이 되어버렸다. 1965년생인 김영만 대표는 마지막 교복세대다. 교복을 걸친 까까숭이가 당구에 빠져 화신백화점 4층에 있던 당구장을 찾아 교복을 사복으로 갈아입고 맨 구석자리 당구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현재 4구 1,000점, 3구 30점의 실력이지만, 사회에 나오기 전에도 300~400점은 찍었다.

졸업 후에는 공무원 생활을 했다. 당구가 더 좋았다. 1997년 투잡으로 송파에 당구장을 차렸다. 이후 공무원 생활을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당구장업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10여곳의 당구장을 경영한 이력을 갖고 있으며, 2010년부터는 서대문에서 베스트당구재료라는 도소매상도 운영하고 있다. 이후 당구장 창업, 매매 사이트도 운영했으며 ‘상생’이란 당구장 인테리어업체도 설립해 운영중이다. 기사 작성에 앞서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모두 대표가 ‘김영만’이다.
코로나로부터는 벗어났지만 자영업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다는 신음도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당구산업의 최전선에 있는 당구장 업계도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김영만 대표의 남은 목표는 자신이 오랜기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큐룸&취중다마 모델을 프랜차이즈 형태로 결실을 맺는 일이다. 오랜 당구장 운영 경험과 당구재료상 사업 및 당구장 창업&매매 이력, 당구장 인테리어 사업체 운영은 시너지가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게다가 성공모델인 직영점에서의 운영 노하우도 축적되어 있다.

“당구장 운영 수입과 함께 음식에서의 수입도 6:4 정도의 비율로 추가되어 일반 당구장 3배의 매출이 가능합니다. 주방 운영도 시스템화 해서 별도의 추가 인력 투입 없이 당구장 운영과 함께 1인이 가능합니다. 24시간 운영되는 직영점 역시 단 3인이 3교대로 운영하고 있지요.”
창업비용은 풀옵션 평당 330만원이라고 한다. 매장 입지선정부터 건물 및 공간에 최적화된 인테리어, 당구재료 및 비품, 식당 및 당구장 관리 교육, 운영 노하우 전수가 원스톱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가장 어두웠을 때가 아침이 다가오는 시간이다. 당구장 업계가 힘들다는 이 시기에도 새로운 컨셉의 당구장이 하나 둘 나타나 변화의 바람을 이끌고 있다. 그 속에 당구의 추억을 당구의 미래로 만들어가는 당구장들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취중다마의 추억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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